1960년대, 대한민국 패션의 중심은 명동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한혜자, 진태옥, 설윤형 등도 첫 출발은 명동의 작은 양장점이었다. 명동 땅값이 계속 올라가자 그들은 제3의 장소에서 패션 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허허벌판이었던 청담동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에 파리 샹젤리제가 있듯, 우리가 한국의 샹젤리제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들은 당시로선 보잘것없는 청담동에 들어가 밭을 일궜고 건물을 올렸고 청담동 패션 거리가 형성됐다. 주변의 권유로 얼떨결에 땅을 샀다 건물을 올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
EBS 역사는 꽤 오래된 것 같지만, 실제로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진 건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 산하에 있다가 2000년 공사 창립을 했지만, 수능 방송 채널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다. 2007년, EBS는 교육방송에서 지식채널로 채널 브랜딩을 새롭게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건 김유열 편성기획부장이었다. 기자로서 그를 처음 만난 건 이때였다. 그는 앞서 ‘노자와 21세기’라는 프로그램으로 도올을 TV에 데뷔시키며 EBS를 유례없는 인기 반열에 올려놓는 ...
인구 1000명당 1명 비율로 발생하는 파킨슨병은 안타깝게도 현재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어렵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손꼽히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의도하지 않은 손의 떨림, 근육 강직과 같은 현상을 동반하고 혼자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한다. 종합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나면 마도파라는 약을 먹는다. 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앞서 언급한 현상들이 잦아들고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작용이 꽤 크다. 대표적으로 초조, 불안, 불면, 환각, 망상이 나타난다. 환자에 따라 특성은 다르지만, 대체로 밤에 이런 현상을 호소...
올해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았다. 숙명여고 사태가 몇 달 동안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수능 국어 31번 만유인력 문제를 둘러싸고 학교 국어 선생님은 물론 물리학과 교수까지 나서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기에 이르렀다. 비난 여론이 잇따르자 수능 출제위원장까지 나서 ‘사과’까지 했다. 여기에 올해 연말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교육이란 화두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며 디테일에 놀랐지만, 지상파 방송사 위기가 굳어지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온-오프라인에서 교육을 둘러...
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박상규는 오마이뉴스 기자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시작해 조직에 몸 담은 지 10년, 그 뒤 그가 선택한 길은 다시 광야였다. 오연호 대표는 그에게 “사장인 내 가슴은 또 설렜다. 어떤 사고를 칠지 기대가 컸다”며 “그를 두 단어로 정리하며 ‘똘끼’와 ‘재미’다”(책 ‘지연된 정의’ 추천사 중)라고 칭했다. 그렇지만 백수가 된 그의 삶은 고달팠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곤궁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를 퇴사한 후 나는 곧바로 지리산 아래 구례군에 집을 구했다. 산나물을 뜯었고, 그걸 팔아 취재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가수 에일리의 노래 제목 같은 이 말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입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 취임 초부터 각종 행사 연출을 도맡아온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자 지난 6월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이를 만류하며 나온 임 실장의 발언은 자못 문학적이기까지 했다. 상당히 옛날처럼 느껴지는 건 그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일들이 많았다는 것, 더불어 문재인 정부를 향한 민심이 이제 농담으로 눙치고 넘어갈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 그 방증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당시 이렇게 말...
도시에 가을이 올 무렵, 시골엔 겨울 준비가 시작된다. 아파트나 빌라와는 달리 전원주택은 시골의 추운 칼바람을 집 전체가 온전히 감내해야 하기에 슬기로운 난방 전략을 세워야 겨울을 안전하게 버텨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가스보일러와 벽난로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걸 추천하곤 한다. 나름의 하이브리드인 셈이다. 일찌감치 장작을 주문했다. 여름내내 텅텅 비어있던 창고에는 열을 맞춘 참나무 장작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넉 달 치는 넉넉히 쓸 양이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인기 있는 참나무 장작 업체에는 이미 봄...
미국 사우스 앨러바마 교수 제임스 L. 어코인이 쓴 책 ‘탐사 저널리즘’(2007)에는 ‘탐사 보도’의 어원이 나온다. 퓰리처상 원장 존 호헨버그(John Hohenberg, 1962년)는 퓰리처상 후보 부문 가운데 폭로 보도에 대해 ‘탐사적’이라고 처음으로 불렀다. 그는 탐사보도 기자들을 사건의 표면 밑바닥을 파내기(digging) 전문가라고 칭했다.전 탐사기자 스티브 하트건(Stephen Hartgen)은 탐사 보도에 필요한 능력으로 △공적 기록의 활용 △사람과 제도 간의 관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을 두 가지 덕목으로 꼽...
지엽적인, 너무도 지엽적인 9월7일, 나를 사로잡은 두 가지 인상 깊은 기자 브리핑 장면이 있었다. # S1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데뷔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울루 벤투(49) 감독은 뜻밖의 발언으로 모두 발언을 채웠다. 그가 데뷔전 기자회견(9월7일) 보다 앞선 취임 기자회견(8월23일)에서 ‘소속팀 활약을 중시한다’는 자신의 발언이 통역 오류로 잘못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 선발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크게 첫 번째로 선수의 능력, 두 번째로 경기력, 세 번째는 ...
눈을 뜬다. TV를 켠다. 뉴스를 볼까? 밤사이 사건 사고 뉴스를 본다. 음. 어제도 봤던 거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넷플릭스를 튼다. 두두우웅~! 하는 넷플릭스 시그니처 사운드가 2살 된 아이의 귓전을 파고든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빨간 로고에 동공이 확대된다. 손뼉을 친다. 스쿼트를 하듯 골반이 상하 직립으로 3회 이상 수직 운동을 반복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뽀로로가 나온다는 강력한 신호의 다름 아니다. 로딩을 끝낸 뽀로로가 드디어 나온다. ‘와 뽀로로다’ 인트로 송이 나오자 한 바퀴, 두 바퀴, 턴을 마치고 기립박수를 ...
밤 10시. 빌딩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비상등을 킨 차가 즐비한 왕복 8차선 도로, 무려 6개 차선을 막고 선 차들 사이를 비집고 아이들이 제각기 총총걸음을 걸으며 차에 탄다. 총 1000여 개 학원이 밀집한 이곳. 바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학원 수업이 종료되는 시간의 풍경이다. 대치동 주차 민원은 매월 4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구청에 쏟아진다. 그래도 학부모들은 내쫓기 어렵다. 강남구는 수서경찰서와 협의해 학원·학부모 차량 임시주차 허용구간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결국 부모 이기는 당국은 없다.‘10 to 1...
새벽 0시 25분, 종로 1가. 해산 작전이 시작됐다. 경찰이 방패로 아스팔트를 ‘쿵쿵’ 치기 시작했다. 1000여 명의 시민은 인도 위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토끼몰이였다. 도로에는 노회찬과 심상정이 있었다. “의원님들은 저희가 소중히 모시겠습니다” 경찰의 따스한 말이 건네지자 “의원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도 아니냐”는 차가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노·심은 팔로 서로를 묶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의원님들 힘내세요, 의원님들 멋집니다”라는 찬사가 날아왔다. 2008년 6월30일, 노회찬을 처음 만난 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
나를 어지럽힌 세월이 있었다. 2017년, 나를 끔찍이도 아꼈던 부모님이 생명의 소임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갔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도 찾아왔다. 회사엔 병가를 내고 생후 50일을 갓 넘긴 딸아이를 둘러업고 거제로 갔다. 고향 통영을 두고 옆 동네를 간 건, 과거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거제도를 쭉 한 바퀴 돌았다. 내게 붙어있던 회한도 부채 의식도 모두 털어내자는 심정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사표를 냈다. 모두가 말렸다. 말을 들을 리 없었다. 10년 기자 생활은 그렇게 끝...